매년 피는 꽃이지만
그 화려함을 감출 수 없고
너무도 짧게 다녀가는 벗이기에
오늘도 카메라를 들고 찾아갔다

Sony A57, DT 18/35 SAM

'사진과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곡항 노을과 야경  (0) 2024.03.16

 

지인의 추천으로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었다.
"도대체 뭘 말하고 싶은거야?" 책을 읽기 시작해서 한 동안은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이 책은 3분의1 정도 후부터 본격적인 흥미를 몰고 오는 책이다. 중간에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읽기를 추천한다.
 
우리는 물속에 사는 모든 생명체를 "어류"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 이야기한다.
하지만 물속에 살고 비늘로 덮여 있다고 해서 다 같은 종류라고 정의 하는 것은 큰 오산이었다.
 
책에 보면 분기학 cladistics 을 연구하는 분기학자 cladists 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들은 누가 누구와 더 가까운 관계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사람들이다.
 
예를 들면,
소, 연어, 폐어(물고기의 한 종류) 중 나머지 둘과 다른 하나는 무엇인가?
우리는 의심없이 "소" 라고 답변을 한다.
하지만 분기학자들은 우리가 비늘이라는 외피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는다면, 더 많은 유사점들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소와 폐어는 둘다 호흡을 하게 해주는 폐와 유사한 기관이 있지만 연어에게는 없다. 폐어와 소는 둘다 후두개(기관을 덮는 작은 덮게 모양의 피부)가 있다. 하지만 연어는 후두개가 없다. 그리고 폐어의 심장은 연어 보다 소의 심장 구조와 더 유사하다.
이런 것들을 보면 연어와 폐어를 같은 종이라 보기 어려운 것이다.
 
책에서는 이러한 분류의 오류를 일으킨 이유를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에모리대학의 유명한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 Frans de Waal은 이것이 인간이 항상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우리의 상상속 사다리에서 정상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우리와 다른 동물들 사이의 유사성을 실제보다 과소평가한다고 말한다. 드 발은 과학자들이 나머지 동물들과 인간 사이에 거리를 두기 위해 기술적인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가장 큰 죄를 범하는 집단이라고 지적한다."
 
우리는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진실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알고 있는 것들 중 진실이 아닌 것들이 있고, 또 진실의 일부만을 겨우 알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요즘 처럼 부를 절대적 가치 기준으로 두고 사람을 분류하고 있는 세태도 무언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SNS에서 너무도 많이 추천되고 있는 김연수 작가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읽었다.

이 책은 김연수 작가의 8개 단편집을 묶은 소설집이다.
 
작가 특유의 느낌이 좋은 글이다. 약간 우울하기도 하지만 따스한 온기를 느낄 수 있다.
8개의 단편중 첫번째 작품의 제목이 "이토록 평범한 미래"이다.
그해 여름 자살을 꿈꾸는 지민, 그녀의 엄마는 작가였지만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남긴 유일한 작품은 "재와 먼지"라는 소설이었다.
 
책의 내용 중 "1972년 10월이 시간의 끝이다"라는 단 한 문장이 문제가 되어, 유신정권에 의해 출판 금지를 겪게 된 책이다.
1972년 10월은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국회가 해산되고 헌법의 효력이 정지되는 유신이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책의 내용은 동반자살을 한 연인이 죽지 않고 미래에서 과거로 진행되는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는 내용이다.
처음 만났던 순간 그토록 설레고 기쁜 마음의 순간으로... 그리고 그 시간 후 다시 정상적인 시간의 흐름으로 세번째 삶을 살게 된다.
우리는 과거의 아름다웠던 기억들을 대부분 잊고 살아간다. 그 순간의 설레이고 소중한 감정들을 망각하고 무뎌진 감각이 우리를 지배한다.
현재와 과거의 감정 사이에는 크나큰 괴리가 존재하게 된다.
이 간극을 기억에서 꺼내 보는 것도 현재의 무감각을 깨뜨리는 자극이 되지 않을까?
 
김연수 작가의 아름다운 표현들도 책을 읽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군락을 이룬 황하 코스모스가 일제히 한쪽으로 몸을 수그렸고..."
이문장은 우리의 시야에 바람으로 누운 코스모스를 자연스레 데려다 준다.

"울음의 주도권은 울음이 쥐고 있었다."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을 이리도 짧고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다니...

 

작가는 후기에서 어떤 글을 쓰고 싶었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한다.
메리 올리버는 "골든 로드"라는 시에서 "빛으로 가득 찬 이 몸들보다 나은 곳이 있을까?"라고 썼다.
이 경이로운 문장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잘 알게 됐다. 직전의 시구는 다음과 같다.
"우리의 삶이라는 힘든 노동은 / 어두운 시간들로 가득하지 않아?"
'어두운 시간'이 '빛으로 가득찬 이 몸'을 만든다.
지금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이런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은 언제가 우리의 삶이 될 것이다.

 

이 작품을 읽으며 왠지모를 쓸쓸함과 아련함을느꼈다.
사랑이라는 것은 어쩌면 다른 말로 쓸쓸함이라고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누구나 마음 한편에 품고 사는...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