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추천으로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었다.
"도대체 뭘 말하고 싶은거야?" 책을 읽기 시작해서 한 동안은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이 책은 3분의1 정도 후부터 본격적인 흥미를 몰고 오는 책이다. 중간에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읽기를 추천한다.
 
우리는 물속에 사는 모든 생명체를 "어류"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 이야기한다.
하지만 물속에 살고 비늘로 덮여 있다고 해서 다 같은 종류라고 정의 하는 것은 큰 오산이었다.
 
책에 보면 분기학 cladistics 을 연구하는 분기학자 cladists 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들은 누가 누구와 더 가까운 관계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사람들이다.
 
예를 들면,
소, 연어, 폐어(물고기의 한 종류) 중 나머지 둘과 다른 하나는 무엇인가?
우리는 의심없이 "소" 라고 답변을 한다.
하지만 분기학자들은 우리가 비늘이라는 외피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는다면, 더 많은 유사점들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소와 폐어는 둘다 호흡을 하게 해주는 폐와 유사한 기관이 있지만 연어에게는 없다. 폐어와 소는 둘다 후두개(기관을 덮는 작은 덮게 모양의 피부)가 있다. 하지만 연어는 후두개가 없다. 그리고 폐어의 심장은 연어 보다 소의 심장 구조와 더 유사하다.
이런 것들을 보면 연어와 폐어를 같은 종이라 보기 어려운 것이다.
 
책에서는 이러한 분류의 오류를 일으킨 이유를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에모리대학의 유명한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 Frans de Waal은 이것이 인간이 항상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우리의 상상속 사다리에서 정상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우리와 다른 동물들 사이의 유사성을 실제보다 과소평가한다고 말한다. 드 발은 과학자들이 나머지 동물들과 인간 사이에 거리를 두기 위해 기술적인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가장 큰 죄를 범하는 집단이라고 지적한다."
 
우리는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진실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알고 있는 것들 중 진실이 아닌 것들이 있고, 또 진실의 일부만을 겨우 알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요즘 처럼 부를 절대적 가치 기준으로 두고 사람을 분류하고 있는 세태도 무언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SNS에서 너무도 많이 추천되고 있는 김연수 작가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읽었다.

이 책은 김연수 작가의 8개 단편집을 묶은 소설집이다.
 
작가 특유의 느낌이 좋은 글이다. 약간 우울하기도 하지만 따스한 온기를 느낄 수 있다.
8개의 단편중 첫번째 작품의 제목이 "이토록 평범한 미래"이다.
그해 여름 자살을 꿈꾸는 지민, 그녀의 엄마는 작가였지만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남긴 유일한 작품은 "재와 먼지"라는 소설이었다.
 
책의 내용 중 "1972년 10월이 시간의 끝이다"라는 단 한 문장이 문제가 되어, 유신정권에 의해 출판 금지를 겪게 된 책이다.
1972년 10월은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국회가 해산되고 헌법의 효력이 정지되는 유신이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책의 내용은 동반자살을 한 연인이 죽지 않고 미래에서 과거로 진행되는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는 내용이다.
처음 만났던 순간 그토록 설레고 기쁜 마음의 순간으로... 그리고 그 시간 후 다시 정상적인 시간의 흐름으로 세번째 삶을 살게 된다.
우리는 과거의 아름다웠던 기억들을 대부분 잊고 살아간다. 그 순간의 설레이고 소중한 감정들을 망각하고 무뎌진 감각이 우리를 지배한다.
현재와 과거의 감정 사이에는 크나큰 괴리가 존재하게 된다.
이 간극을 기억에서 꺼내 보는 것도 현재의 무감각을 깨뜨리는 자극이 되지 않을까?
 
김연수 작가의 아름다운 표현들도 책을 읽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군락을 이룬 황하 코스모스가 일제히 한쪽으로 몸을 수그렸고..."
이문장은 우리의 시야에 바람으로 누운 코스모스를 자연스레 데려다 준다.

"울음의 주도권은 울음이 쥐고 있었다."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을 이리도 짧고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다니...

 

작가는 후기에서 어떤 글을 쓰고 싶었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한다.
메리 올리버는 "골든 로드"라는 시에서 "빛으로 가득 찬 이 몸들보다 나은 곳이 있을까?"라고 썼다.
이 경이로운 문장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잘 알게 됐다. 직전의 시구는 다음과 같다.
"우리의 삶이라는 힘든 노동은 / 어두운 시간들로 가득하지 않아?"
'어두운 시간'이 '빛으로 가득찬 이 몸'을 만든다.
지금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이런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은 언제가 우리의 삶이 될 것이다.

 

이 작품을 읽으며 왠지모를 쓸쓸함과 아련함을느꼈다.
사랑이라는 것은 어쩌면 다른 말로 쓸쓸함이라고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누구나 마음 한편에 품고 사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에게 끌리는 감정을 느끼게 되는 때가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랑이라는 단어로 모든 관계를 정의할 수는 없지만,
일단 그렇게 표현해 두자.
 
하지만 이렇게 시작된 사랑도,
시간이 지나면 봄의 아지랑이 처럼 내면의 갈등이 조금씩 피어오른다.
내가 다가서고 싶은 만큼의 거리와 상대가 유지하고 싶은 만큼의 거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다가서고 싶은 거리가 상대의 심리적 경계를 넘어서게 될때,
상대에 대한 기대, 요구, 실망, 서운함과 같은 감정들이 밀려온다.
 
그 사람의 일부 행동들이 단초가 될 수 있다 하더라도, 나의 그러한 감정들은 결코 그 사람에게서 시작된것이 아니다.
내가 느끼는 관계의 깊이의 차이에서 기인한 나의 감정인 것이다.
 
이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를 숨긴채 계속해서 더 사랑을 해야 할까?
서로의 온도 차이를 두고 나를 알아달라고 투정을 부려야 할까?
 
너무나도 잘 알고 있듯이,
사랑은 강요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랑의 감정을 인위적으로 끌어낼 수 없다.
 
어떤 책에서 읽었던 내용 중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바람이 숨 쉴 공간이 필요하다.
 
나에게 불편한 마음이 있다 하더라도, 
조금 더 참고 그것을 사랑으로 승화하는것,
바람이 숨 쉴 공간을 만들어 주고,
그저 기다리는 것.
이것이 사랑이 아닐까?
 

 
나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만족스러워 하지 못한다.
내가 무언가를 이룬것은 그렇게 크게 생각되지 않고, 남들이 무언가를 이룬것은 굉장히 크게 보이기 마련이다.
 
얼마전 직장 동료에게 회식 자리에서 칭찬을 하게 되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동료는 자기 자신의 부족함에 많은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다른 직종의 일을 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까지 했었다고 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 동료의 주변에서는 그를 칭찬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그 말 보다는 자신의 내면의 소리가 더 크게 들렸던 것이다.
그 동료에게 때로는 주변의 지속적인 칭찬들이 나를 냉정하게 평가하는 잣대가 될 수도 있지 않겠냐는 조언을 해 주었다.
 
오늘 그 동료가 술자리에서 추천했던 넷플릭스 드라마 One Day를 보다가, 그 동료에게 해주었던 말과 너무나 비슷한 장면이 나와 놀라웠다.

You know what I can’t understand. You have all these people telling you all the time how great you are. You know, smart and funny and talented all that. I mean, endlessly. I’ve been telling you for years. So why don’t you believe it? Why do you think people say that stuff? Do you think it’s all a conspiracy? People secretly ganging up to be nice about you?
 
내가 이해 안되는 게 뭔지 알아? 네 주변 사람들은 항상 네가 얼마나 멋진지 말해 주잖아. 똑똑하고 재밌고 재능 있는 사람이라고. 계속해서 말해주지. 나도 몇 년째 말했고. 근데 왜 못 믿는 거야? 사람들이 왜 그런 말을 한다고 생각해? 그게 다 음모인것 같아? 사람들이 너 칭찬해 주자고 작당한 것 같아?

 
내가 평가하는 나와 다른 사람들이 평가하는 나는 분명 차이가 있다. 내 스스로의 평가가 늘 옳다고도 할 수 없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나의 이성이 만든 나의 생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 생각과 나는 거리가 있을 수 있다.
내 자신이기에 때로는 냉정하게 평가할 수 없는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때로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좀 판단하게 내어주는 것이 나의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

 
드라마를 보며 또 한가지 좋았던 것이 레트로 감성을 자극하는 OST를 듣는 것이었다.
드라마의 영상을 입힌 After Hours을 들어보시길 추천한다.
https://youtu.be/NJjtmQdFIRE?si=uUdLpQKpV9cCmQO-

 

보도 섀퍼의 이기는 습관에 나오는 Gilbert Kaplan에 대한 이야기이다.
 
길버트 캐플런 Gilbert Kaplan은 25세에 금융전문 잡지를 창간하고 큰 성공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가 40세가 되던 해에 구스타프 말러 Gustav Mahler의 교향곡을 듣고 큰 감명을 받는다.
그 후 캐플런은 말러의 교향곡에 심취하게 되고, 모든 버전의 오케스트라를 찾아 듣게 된다.
하지만, 무언가 조금씩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 캐플런은 다른 방식의 해석이 필요하며, 모두가 못한다면 자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휘자가 되겠다고 결심한 캐플런은 회사를 매각한다.
그는 그때까지 단 한 번도 지휘를 해본 적이 없었고 어떤 악기도 연주할 줄 몰랐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하고 손가락질 했다.
하지만 캐플런은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열정적으로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최고의 지휘자를 찾아가 그들의 코칭을 끌어냈고 꿈을 이루기 위해 매진했다.
2년 후 1996년 캐플런은 마침내 지휘자가 되었다. 
그의 오케스트라가 취입한 앨범은 그해 최고의 클래식 명반으로 각광 받았다.
그리고 그해, 잘츠부르크 음악제 개막 공연에서 그는 지휘자로 무대에 섰다.

 
비슷한 맥락으로 라디오스타에서 백지영이 마동석과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한 것이 있다.
마동석이 백지영의 트레이너로 일하던 시절, 그는 단역 배우로 일하고 있었다.
그때 그는 백지영에게 자신이 유명한 배우가 될것이고, 영화를 만들것이며, 헐리웃에 진출할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백지영은 마동석의 꿈이 너무 크다고 생각했고, 말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그 후 마동석은 자신이 말한 모든 것을 이루고, 백지영과 만나게 되었다.
이때 백지영은 마동석이 과거 자신에게 했던 말을 기억하는지를 물었다.
마동석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때는 매일 그 생각만 했기 때문에 모두에게 그렇게 얘기를 하고 다녔다고.
이 일화를 얘기한 백지영은 마지막에 이렇게 이야기 한다.
다른 사람의 꿈이 아무리 커도 그것을 내가 판단하고 재단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누구나 큰 꿈을 꿀 수 있고, 그 꿈의 크기는 누구도 평가 절하할 수 없다.
 

당신은 살면서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아본 적 있는가?
 
모두가 코웃음 치는 일에 도전한 적 있는가?

 

+ Recent posts